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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그분의 자유

글 | 서용운 회원

 

 

 

어쩌다 보니 느닷없이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된 윤석열이나 무엇에 홀린 듯 찍고 보니 영 시답지 않은 대통령을 보는 국민들이나 힘들기는 매 한 가지가 아닌가 하는 세월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저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니 왠만하면 좋게 보려고 해보았습니다만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좋게 보면 어떻고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떻겠습니까만, 그중에서 제가 조금 세게 꼬집고 싶은 것은 윤 대통령의 말입니다. 지난 8.15 광복절 경축식에서 13분간 축사를 했는데 자유라는 말을 33차례나 했다지요. 풀어서 본다면 자유 민주주의라는 것인데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될 것을 자유를 왜 붙이는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윤 대통령의 자유라는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국 자유 총연맹입니다.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 발전시키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대표적인 관변단체이지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전 이름은 한국 반공연맹이었지요. 제가 알기로는 서울 남산 기슭 아주 좋은 자리에 꽈리를 틀고 앉아있습니다. 그 다음에 생각나는 것이 자유당’(이승만 정권의), ‘민주 자유당’(3당 합당으로 생겨난 노태우 정권의), ‘자유와 통일당’(전광훈의), 그리고 일본의 자유 민주당’(아베가 몸 담았던). 이런 정당이나 단체들이 떼어다 붙인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름 아닌 반공이지요. 우익 수구 세력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단어입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도 딱 그 수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른 쪽 이야기를 좀 하자면 재벌 회장이 중국을 겨냥해서 멸콩이라고 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실제고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형 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집어들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도 했는데,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국민들이 찍었으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단히 편향된 이념이고 시대에 한참 역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것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래된 기억 속의 그분. 아마 삼십몇 년 전쯤 초겨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해마다 그때쯤이면 서울 어느 대학에서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행사였을 텐데 무대 앞에 감옥이 만들어져 있고 어떤 분이 푸른 수의를 입고 그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감옥 창살 만큼이나 두꺼운 안경테에 입술이 유난히 두툼한 채 관중석을 향해 쳐다보고 있는 그 모습. 지금도 눈 앞에 선합니다. 시인 김남주 선생이었습니다. 창살 안에 갇혀 있는 자유였지요. 아시다시피 김 선생님도 1979년 소위 남민전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1988년 형 집행 정지로 93개월을 복역하고 막 출소한 후에 무대 안 감옥에 다시 들어간 것이지요. 그 뒤로 김 선생님을 먼 발치에서라도 다시 뵌 적이 없습니다만, 노래로 듣고 만나고 했습니다. 1990년대 초에 안치환이 김 선생님의 시 자유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 시작에 두꺼운 안경테처럼 굵은 목소시로 시를 읽는 선생님은 말 그대로 투사의 소리였습니다.

 

 

김남주의 자유’. 많이들 아시겠지만 자유를 적어봅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윤석열의 자유를 이야기하다가 김남주의 자유를 말하니까 속이 뻥 뚤리는 이 통쾌함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 제 자신을 속이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그 시는 어쩌면 한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시는 <나의 칼, 나의 피>라는 시집에 실린 것인데 김 선생님이 전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마시고 버리는 우유곽에 못 같은 것으로 꾹꾹 눌러서 쓴 것이라고 하니, 뻥 뚤린 가슴 속이 다시 먹먹해져옵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자유를 말하지 않으면 헌법의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하고, 그런 사람들은 사회주의자 혹은 좌파라고 하는 시대에 김남주 선생의 자유는 큰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남주 선생은 1992년 췌장암이 발병하여 1994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 강의실이 김남주 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 서용운 회원은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