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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채비 (회원통신 2019.02월)


01.

 나는 인간을 쓸모 있는 것인지 아닌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고 이득과 쓸모로 생각하며 물질과 편리의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길에 들어서버렸다. 어느 부분에서는 예민하고 민감하게 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쉽게 타협해버리고 마는 뿌리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배움과 가르침 삶이 일치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건조하고 메마른지 또한 그럴수록 더욱 뻔뻔해져서 더 이상 서로 다름을 인간적인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그럴듯하게 바꾸는 일까지 부끄럼 없이 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 마음과 생각은 세상의 것들을 한없이 좇아간다. 깊은 마음 속 어딘가와 가느다랗게 연결되었던 실마저 끊고 세상의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날아가는 연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서있는 장면마다 만나는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면모들을 드러내며 나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되는 거다. 그러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한낮의 빛과 어둠이 뒤섞이는 저녁이 되면 그리고 나 혼자 잠잠히 있는 때가 되면 그제야 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02.

 나는 왜 나약한 것들을 미워하는가?

 나는 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못하는가?

 세상의 힘 있는 것들에 매번 무릎을 꿇고 마는가? 나는 세상이 가진 힘의 논리를 깊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강한 것들에 질 거라 믿는 것이다.

 다수에게 편승하지 못할 때 남겨지는 외로움과 시선이 두려운가?

 내가 딛고 선 발은 타인의 말들 위에 있단 말인가?

 


03.

 3월, 봄이 시작되는 달이 되면 아이들과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2월이 되면 그 출발을 앞두고 여간 초조해지는 게 아니다. 시간의 흐름 덕에 새시작의 계기들이 있다하더라도 기록될 것들은 변함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풀어야 할 매듭져진 일들이 있다. 단번에 풀 수 없는 것들이니까, 차근차근 성실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싶지만 어쩐지 모르게 진실된 마음은 너무 쉽게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잡은 손을 놓치고 만다.



0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선다. 어디서부터 손을 놓쳤는지 생각하여 본다. 내 삶에 조화롭지 못한 것들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여본다. 깊은 우물 속으로부터 길어 올려 진 차가운 물을 마신 듯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러면 중요한 것들이 다시 떠오르고 하찮게 또는 불편하게, 여겼던 일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돌본다. 그러다보면 상냥함이 돌아오고, 유쾌함도 되찾아 나도 모르는 용기로 하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결단의 날 선 칼로 끊지 못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덩굴이 되어 내 발목을 잡아채고 있다는 것을 느끼더라도 그럴수록 서둘러서는 안 된다.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넘어지며 일어서며 걷는 거친 길 위에서 나약한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약한 내 자신이 있을 때 세상의 나약한 것들을 보듬게 된다는 걸, 어쩌면 강하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약해지고 낮아지는 것이 메마른 내 삶에 한 방울의 단비가 된다는 걸 믿는다. 

 


05.

 모든 것이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게 아니다. 세상의 조화롭지 못한 것들을 조화롭지 못하더라도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