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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모음/› 회원기고

<마음시> 쓰러진 나무

저 아카시아나무는

쓰러진 채로 십 년을 견뎠다

 

몇 번은 쓰러지면서

잡목숲에 돌아온 나는 이제

쓰러진 나무의 향기와

살아 있는 나무의 향기를 함께 맡는다

 

쓰러진 아카시아를

제 몸으로 받아낸 떡갈나무,

사람이 사람을

그처럼 오래 껴안을 수 있으랴

 

잡목숲이 아름다운 건

두 나무가 기대어 선 각도 때문이다

아카시아에게로 굽어져간 곡선 때문이다

 

아카시아의 죽음과

떡갈나무의 삶이 함께 피워낸

연초록빛 소름,

십 년 전처럼 내 팔에도 소름이 돋는다

 

 

 

여름 방학을 보내고 학교에 가보니, 태풍에 학교 전나무가 쓰러져 있다. 평소에도 우람한 자태로 학교를 지키더니 마지막까지도 학교 담장을 건드리지 않고 얌전히 모로 넘어졌다고 한다. 쓰러진 지 보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푸른 잎들이 무성하니 본디 모습이다. 잡아당겨 세우면 다시 자리 잡고 살 것만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은 전나무 소식에 어머나!’ 한번 놀라더니 그러고 만다. 아직 그들에게 자연은 무덤덤하다.

2년 전부터 거의 매주 가까운 산길을 걷고 있다. 수시로 모악산, 학산, 건지산을 요리조리 다니고, 가끔은 한두 시간 차를 타고 나가 산행을 하기도 한다. 간혹 섬에 있는 길을 찾아 걷기도 한다. 서너 명이 어울려 이런저런 담소를 나무며 두세 시간의 짧은 산행을 하는 시간이 참 즐겁고 좋다. 우울한 마음도 찌뿌둥한 몸도 개운해지고, 자연과 사람의 좋은 기운을 얻는 기분이다.

산행 동료들이, 그 산에서 만나는 초록빛 자연이 나에겐 떡갈나무다.

 

글 이형월/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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