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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찬성과 반대 사이 (김남규위원장)




살다보면 ‘너는 어느 편이야?’ 혹은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질문을 받을 경우가 있다. “자사고(상산고) 폐지에 찬성하십니까? 아니면 반대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과거에는 비교적 선택이 간단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복잡하다. 아니 불편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셋도 아니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데 뭐가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것인가? 


첫째, 나의 생각조차 어느 편에 줄을 세우는 것이 싫다. 과거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논쟁이 그렇다. 진보는 보편적 복지, 보수는 선별적 복지라는 프레임을 걸어놓고 둘 다 증세 없이 복지를 하겠다고 했다.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정치적인 사기라는 생각인데 진보·보수 편 가르기 논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말이 짧아져 충분한 의사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방송토론자 섭외 요청 때 흔히 “○○에 대해 찬성 의견인가요? 반대 의견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찬반 논쟁 구도에 익숙한 방송 토론이라는 점을 이해한다하더라도 “○○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훨씬 자유롭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른바 ‘빠’들의 앞뒤 없는 격한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 SNS에 상산고 재지정 평가 의견을 밝혔다가 ‘그러니까 폐지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라며 평소에 잘 알고 지낸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에 보는 사람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평가 받고 지탄 받아야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사고 폐지 논쟁으로 돌아가 보자! 자사고(상산고) 폐지 찬·반의 프레임에 갇혀 지역사회가 더욱 격해진 모습이다. 지역신문사의 모 주필은 ‘상산고는 전북의 자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과거 전주고와 전주여고의 명성을 이은 명문고라며 치켜세웠다. 도내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 역시 전북교육청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정운천의원은 ‘상산고가 전북의 자랑, 대한민국의 명문 고등학교로 남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본론은 전북교육청의 평가지표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지만 한쪽에서는 ‘차별·서열화 교육의 주범 자사고 폐지’와 ‘수월성 교육, 지역 명문학교’ 지키기라는 프레임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프레임 논쟁으로 공교육(일반계 고등학교)의 정상화가 묻혀버렸다. 자사고의 폐해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자사고를 없앤다고 공교육이 정상화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자사고 학생들이 의대를 진학하든 SKY를 진학하든 관심이 없다. 교육서열화의 주범이 자사고 때문이라고 하는데 현실을 보자. 자율이 아닌 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진행하고, 서울대를 비롯해 수도권 대학에 몇 명이 진학했는지를 자랑하는 일반계 고등학교는 정상인가? 일반계 고등학교를 또 다른 입시학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입시 제도를 바꾼들 대학 서열화가 없어지고 아이들이 행복해지겠는가? 우리 아이들은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평준화 교육과 수월성 교육에 대한 프레임 논쟁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습량(교과목)부터 줄여야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한곳에 모아 놓는 자사고가 문제이듯, 학습이해 능력이 너무 차이가 나는 아이들을 한반에 모아 놓고 잠자는 학생을 방치하는 것이 평준화 교육인지 묻고 싶다. 고교학점제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관심 있는 분야를 스스로 선택하여 공부하고, 진로와 학습 능력에 맞게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사고만 문제가 아니라 산술적 평균으로 평준화 교육을 바라보는 것도 문제이다.

 

나는 자사고 폐지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번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평가는 경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당 기관이 이전보다 향상되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평가는 정말 복잡한 문제이다. 정량적 평가는 서류 작업 능력에 따라 산술적 오류에 빠질 수 있고, 정성적 평가는 주관적 판단에 따른 오류가 항상 발생한다. 때문에 평가지표는 측정 가능해야하고 피 평가자의 형평성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이번 상산고의 경우 자사고로서의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적합한가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전북교육청의 평가지표는 처음부터 폐지 수순을 밟기 위한 것으로 평가의 목적과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본다. 언론에 이미 알려졌듯이 다른 지역의 기준 점수 70점 보다 10점 높은 80점을 적용한 것, 상산고에 적용해야 할 사회적 배려자 전형을 3%에서 10%로 올림으로써 0.39(79.61/80)점 차이로 재지정 취소 수순을 밟은 것이 역풍을 불러왔다. 


김승환교육감은 평가의 개입을 부정했다. 김교육감은 자사고 폐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것 때문에 상산고 재지정 취소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것을 운운함으로써 평가의 공정성과 평가결과에 대한 수용성, 신뢰성을 이미 상실했다. 더구나 ‘전라북도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에서 자사고 폐지에 대한 김교육감의 의지를 묻는 취지의 발언이 오간 것은 평가 기준을 80점으로 높이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교육감은 교육부의 ‘상산고 재지정 취소 부동의’에 대해 “정부와 교육부는 더 이상 교육개혁이란 말을 담지 않길 바란다”, “장관 동의권은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조항이고, 정권이 바뀌면서 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육부는 ‘이 조항을 없애겠다’는 합의를 했다”, “이미 사망선고 당한 조항을 교육부가 활용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교육감이 말한 합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조항’이라는 말로 이번 사태가 갈무리 될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김교육감의 무리수가 상산고를 살려준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주장도 있다. 자사고 폐지가 진보와 보수의 가치적 논쟁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정의 정당성은 이념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다. 찬반으로 정치적 편을 가르지 말라!




글 | 김남규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