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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녀석이 갔다 (2019.04월)


글 | 이주희 회원


 삼월의 어느 화요일 오후, 낯선 사람이 6학년 선생님을 찾아 교무실에 왔다. 우리반 우현이의 작은아버지 그리고 우현이가 있는 시설의 원장님이셨다. 작은아버지께서는 우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녀석은 짐을 챙겨 갔다.


 작년 5학년 담임을 맡아서 녀석을 처음 만났다. 이 학교로 부임해 오니 5학년 담임 자리가 비어있었다. 우현이 이 녀석 때문이었다. 이 녀석의 레전드급 이야기는 엄청 많다. 대부분 사고 친 이야기다. 하지만 풍문으로만 들은 확인할 수 없는 아픈 이야기도 있었다. 아기였을 때부터 시설에 맡겨져 이곳저곳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거다. 역시 녀석은 삼월 첫날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단 수업시간에 계속 크게 말을 했다 노래를 했다 하면서 애를 먹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틈만 나면 다투었다. 아이들도 우현이에 대해선 날이 서있었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매일 매시간 마다 녀석과 전쟁을 치르느라 진이 빠지곤 하였다.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교실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 난간을 붙잡고 떨어진다 떨어진다 하는데 2층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린 녀석이 손을 놓을까봐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렇게 힘든 3월을 보내고는 어떻게든 녀석과 화해의 손을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녀석이 지나온 시간을 나는 지나본 적이 없다는 것과 녀석이 걷고 또 걸었을 지독하게 혹독했을 길을 나는 걸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선생이라 해도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녀석은 잔뜩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 녀석을 좁은 내 시야 안으로 넣으려는 건 억지였다는 생각, 그래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녀석이 하루에 몇 차례나 벌이는 일들이 문제로 느껴지지 않게 되자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났다. 쑤셔놓은 벌집처럼 녀석이 윙윙 댈 때도 나지막하게 “우현아, 속상한 일 있었어?”라고 녀석을 도닥이면 녀석은 씩씩대면서 때로는 엉엉 울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녀석은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끝날 즘에는 씻겨나간 얼굴과 목소리로 내 곁을 떠나곤 하였다. 녀석의 명랑성은 타고 났다. 아무리 구겨진 기분도 금세 활짝 편다. 녀석은 웅크린 마음과 기지개 켜는 마음을 하루에도 몇 차례나 오가면서도 큰 목소리로 떠들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또 똥 이야기에 배꼽 빠지는, 초등학생인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작은 아버지를 따라 전학가게 된 녀석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말 많고 질문 많은 녀석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잘 가라는 말밖에 못하고 운동장 밖으로 점점이 사라지는 우현이에게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러고는 우현이가 보이지 않았을 때 다시 한창 회의 중인 교무실로 돌아와,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모두들 놀라는 것 같았지만 소리죽여 울 수가 없었다. 체면이고 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바보같이 엉엉엉 울고 말았다. 


 녀석이 떠난 빈자리는 컸다. 교실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던 크고 시원한 목소리가 없어 적막했다. 수업시간마다 설명할 땐 딴 짓하다 설명 끝나면 귀신같이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를 5번 즘 물어보던 녀석이 없다. 출근할 때 내 차를 향해 달려오던 녀석이 없다. 바깥 산책을 나가면 내 손을 잡던 녀석이 없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를 불러대던 녀석이 없다. 추석 때 즘 함께 송편을 빚는데 녀석이 “쌤~~ 저 송편 처음 만들어 봐요. 내년에도 쌤이 6학년 맡아서 또 송편 만들어요.”말하던 그 녀석이 없다. 나는 그 녀석 때문에 6학년을 맡았는데. 


 이별의 일에는 작별에 대한 인사와 슬픔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그런 시간 없이 녀석이 증발하듯 사라진 것을 생각하여보면 우리는 그래도 괜찮은데 그 녀석 속은 어떨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풍문으로 누군가는 다른 시설로 옮겨진 거라고도 하고 작은아버지랑 산다고도 했다. 그 녀석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확인할 길이 없다. 녀석이 옮겨간 학교 앞으로 아이들과 상의해서 편지랑 선물을 준비하였다. 상자 안에 선물과 아이들이 쓴 편지를 고스란히 담아두고는 그대로 두었더니 우리반 아이들이 아직도 안 보냈냐며 오늘은 꼭 보내세요를 몇 차례나 말하였다. 그렇지만 이걸 보내면 정말 그 녀석을 보내는 것만 같아서 녀석에게 써야 할 편지를 하루하루 미루었던 것이다.

 

 택배에 적혀있던 번호를 보고 우현이가 전학 간 학교의 담임 선생님이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주희 선생님 맞으신가요? 오늘 택배를 받았습니다. 우현이에게 편지랑 선물 전달하고 반 친구들에게 간식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우현이가 많이 기뻐하더라구요. 우현이가 갑자기 전학가게 되어서 많이 서운하셨죠? 저도 급하게 전학을 와서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우현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작은아버지께서 신경 많이 써주시고 다행히 적응도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신경써주시고 편지까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그 녀석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선생님, 선생님이 보내준 간식 애들이 먹을 때까지 계속 강우현! 강우현! 강우현! 외쳤어요. 엄청 기분 좋았어요. 여기 애들도 엄청 착해요. 선생님도 좋고요. 급식만 조금 그래요. 제가 선생님 전화번호 알아내려고 얼마나 그랬다구요. 작은아버지 핸드폰에서 이주희샘만 찾았다니까요. 근데 없는 거 에요. 그런데 그냥 선생님으로 되어 있더라구요.”금방 만났다 헤어진 사람처럼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 울려오는 그 녀석의 명랑한 목소리. 


 그래, 따스한 둥지로 우현이가 잘 갔구나. 그곳에서 우현이는 우현이답게 잘 지내고 있구나. 그 녀석에게 보낸 편지 끝에 적었던 이 말 ‘그 동안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에 하나 더 얹는다. ‘잘 지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