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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喬桐島)와의 인연 :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들

글 백종만 고문

 

교동도는 강화도 서쪽에 자리 잡은 밤톨 모양 섬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교동도는 잘 몰라도 교동도에서 남쪽으로 약 2km 정도에 있는 석모도를 여행해 본 사람들은 많다. 석모도에는 서해 낙조를 볼 수 있는 명소인 보문사라는 절이 있어서 그렇다. 교동도에 처음으로 들어가 본 것은 강화도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교동대교가 완공된 직후인 2014년 초가을이지만, 교동도라는 섬 이름을 듣고 한 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의 일이다.

2012년도 어느 날 가을날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강화도 서쪽 해안가에 있는 창후항에 가게 된다. 어항으로 더 알려진 창후항에 어떤 생선들이 있나 구경하고 구매하는 것이 방문의 주목적이었다. 물고기들을 흥정하고 난 후 항구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이 궁금하여 항구 직원에게 물어보니 교동도라는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라고 말한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배표를 구매하고자 하였으나, 마지막 배편이라 관광 후 나오는 배편이 없다는 말에 교동도와의 첫 만남을 포기하였다. 직원이 교동대교가 곧 완공될 예정이니 그때는 자동차로 여행도 가능하게 된다는 소중한 정보를 주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강화도에 자전거 여행을 와서 창후항을 방문할 때마다 차근차근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웅장한 다리를 볼 수 있었는데, 마침내 201471일에 교동대교가 개통되었다.

그해 7월 중순 경에 자전거를 싣고 승용차로 교동도를 다녀올 수 있었다. 교동도를 가기 위해서는 해병대 검문소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교동도가 민통선 안의 지역이라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교동도 주민이 아닌 일반 방문객들은 당일 해지기 전에 교동도를 빠져나와야 한다는 여행객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었다. 교동도 대교를 건너 만난 왕복 이차 선 포장도로에는 가로수가 전혀 심어져 있지 않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군사적 안보를 위해서 침투한 적이 숨을 수 있는 은신처가 될 수 있는 가로수를 의도적으로 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로수 그늘이 전혀 없는 도로에서 여름 땡볕에서라이딩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라이딩을 포기하고 자동차로 교동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민통선 지역 안에 있는 섬이라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되어서 황량한 느낌이지만 인간의 인공적 구조물이 없이 생긴 그대로 모습으로 남겨진 교동도는 나름 매력적인 곳이다.

교동도의 첫인상은 가꾸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순박함이다. 섬의 중앙 지점쯤에 있는 재래시장은 대룡시장이다. 대룡시장은 1960년대에나 볼 수 있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주로 파란색 혹은 진한 자주색 함석으로 지붕을 올린 여러 점포들의 처마 아래에는 제비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제비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고 지지배배 우는 모양에서 유년 시절 외갓집에서 본 제비집의 추억을 떠올린다. 대룡시장 앞쪽으로 펼쳐진 나름 광활하게 보이는 넓은 논의 푸른 벼들 그리고 그 위를 무리 지어 날렵하게 날고 있는 검은 제비 떼들을 본 것도 행운이다. 내가 만경평야나 춘포 평야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착각을 할 정도이다.

교동대교 개통 후에 매스컴을 통하여 교동도는 시간이 머문 곳이라고 소개된다. 이는 1960년대의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대룡시장에서 비롯된 카피라이트이다. “시간이 머문 곳교동도는 일박이일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동네 한 바퀴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현재는 주말에는 약 일만 명 정도의 방문하는 명소가 된다, 교동도의 원주민들은 대부분이 황해도 연백에서 건너온 실향민들이다. 6, 25전쟁 이전에 북한 영토였던 교동도에 전쟁을 피하여 교동도로 피난을 온 연백 주민들이, 휴전 후에 교동도가 남한 영토가 되어서 이북으로 돌아갈 수 없어 실향민으로 살아온 것이다.

교동도와의 인연의 시작은 아내의 말 한마디에 염원하고 있다. “여보 나 죽기 전에 바닷가 집에서 한번 살아 보는 것이 로망이야라는 말을 여러 번 하였다. 평소에 말이나 요구사항을 반복하지 않고, 한 번만 하고 끝내는 쿨한 성격을 가진 아내가 바닷가 집에 살고 싶다는 로망을 여러 차례 토로하는 것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은퇴 후에 바닷가에 집을 하나 마련해서 아내와 함께 즐겁게 여생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로망 실현에 앞장서서 나서기로 작심한다. 아내의 고향은 전남 여수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지금은 여수 해양 공원으로 개발된 총포에서 10원을 내면 바다 건너 돌산도 해변에 갈 수 있고, 돌산 해변에서 고동을 잡던 어린 시절 추억이 너무 좋고 행복하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아스라한 과거가 되었다는 아내의 말에서, 바닷가에 접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의 간절함을 어느 만큼은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로망 실현을 한 첫 작업은 시작한 것은 2014년 초로 기억한다. 처음 방문한 곳은 아내의 고향인 여수이다. 바닷가 집은 매물도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매물들은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수에 이어서 방문한 곳은 둘째 아들이 해군 운항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포항과 제주도이다. 이곳에서도 여러 해애 걸쳐서 바닷가 집을 찾아보게 된다. 당시에 제주는 투자 열풍이 매섭게 불어 매물도 적었고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이었다. 2014년부터 약 4년 정도에 걸쳐서 바닷가 집을 알아보고 직접 부딪혀 보니 어느 정도 집을 보는 안목도 생기게 되었다. 4년 정도에 걸친 탐색 결과 내린 나름의 결론은 바닷가 주택은 대체로 펜션 물건으로 10억 이상을 투자해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망은 로망으로 끝내야 하지 무리하면 불행해질 수 있다며 로망을 정리해 나가는 수순을 밟으려 하던참 이었다.

2017년도 7월에 이루어진 교동도와의 첫 만남이 준 나름의 강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교동도는 우리 부부가 다시 가보고 싶은 자전거 여행지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채로 잊혀간 섬이 되었다. 그런데, 20187월 초순경에 한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바닷가 갯벌까지 500m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1억 원대 중반 수준의 가격의 집이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집의 소재지가 교동도임을 확인하고 생각해 보니 4년 전에 한번 방문했던 섬이었다. 강제로 눌러 두었던 로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우연히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교동도를 다시 갈 명분이 생겨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바다가 진짜 보일까? 갯벌이 정말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그 가격에 가능할까? 허위 매물이 아닐까?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지만, 일단 방문해보기로 한다. 20187월 말경에 교동도 남산 포에 있는 집을 방문하였다. 집주인의 안내로 주택 이층으로 올라가 보니 천정과 벽이 나무로 되어있어 나무 향이 코를 찌른다. 남쪽으로 난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서 200m내지 300m 거리에서 바닷물이 출렁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내는 옆구리를 찌르며 여보! 이 집 사자고 귓속말을 한다. 나도 그래 좋아하고 동의한다.

우연이 쌓이면 필연이 된다고 한다. 바다를 좋아하여 바닷가 집에 살고 싶다는 아내의 로망, 그리고 은퇴 후 자연에 묻혀서 살고 싶다는 나의 로망은 이루어져야 할 꿈이기에 필연이 된다. 4년에 걸쳐서 여수 포항 제주 등에 있는 바닷가 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웹 서핑을 통해서 로망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동안 눈으로 보고 읽음 관련 정보들은 어쩌면 우리 부부가 우연히 얻은 것들일 수 있다. 또 교동도에 자리 잡게 된 것도 우연하 찾아온 행운일 수 있다. 나는 그러한 행운이 비록 우리 부부에게 우연히 찾아온 것이라 해도, 그 행운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여 노력한 일들이 축적되어 필연적으로 우리 부부에게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종만 고문님은 창립대표로 지금까지 함께 하고 계시며,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으로 계시다가 현재는 은퇴하여 강화군 교동도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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