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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월 19일 남원 김주열열사 묘역 참배에서의 기시감

김남규 대표

 

매년 419일이 되면 활동가들과 함께 남원 김주열 열사 묘소를 찾는다. 30대 초반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올해 열사의 묘소와 추모관을 살피던 중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낡고 초라한 추모관 때문만이 아니다. 추모관에 있는 빛바랜 열사의 사진과 열사가 쓰던 학용품과 상장 등 누렇게 변해버린 유품 때문만이 아니다.

 

지난 517, 전북대에서 5.18 민중항쟁 44주년 기념식 및 이세종 열사 추모식이 열렸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공식 조사 결과로 이세종 열사가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로 밝혀진 상황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세종 열사가 첫 희생자라는 점에 의미와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필자는 첫 공식 조사라는 데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다. 첫 희생자의 공식성을 인정받는 데까지 44년이 걸렸다. 물론 진상조사 특별법광주 일원으로 조사 대상과 범위를 제한하고 있어서 그동안 광주 밖 이세종 열사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정이 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공식 조사가 시작되어 비로소 5.18 첫 희생자라는 사실이 공식화되었다.

 

필자는 그동안 이세종 열사의 유적 보존과 열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에 대해 글과 방송 인터뷰로 이야기를 해왔다. 장소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201710/회원통신), 늦게나마 다행이다(20205/회원통신), 전북대 학생회관 신축, 이세종 열사 유적 보존해야 한다 (20216/전북도민일보) 등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개인적인 소회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소회가 김주열 열사 묘소에서 기시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낡은 추모각에서, 빛바랜 유품에서 우리를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전북대 1학생 회관 철거 소식을 들었을 때, 열사의 주검이 발견된 자리의 표지석이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돌이 되었을 때, 진상조사위원회에 조사 대상을 신청하려고 했었을 때.........,’

 

유리 상자 안에 빛바랜 김주열 열사의 유품을 그대로 방치 한 채 매년 기념식을 여는 남원시도 그렇고 그런 사정을 모르는 전북 자치도 역시 그렇다. 남원이 고향인 김주열 열사를 넘어서 4.19혁명의 역사를 품은 김주열 열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소외와 낙후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낙후와 소외는 우리 안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