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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주희

 

성탄절을 앞두고 인쇄소에서 나온 학급시집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하며 큰 박수가 쏟아졌다. 신이 난 아이들은 시집을 펼치느라 교실은 시집 제목처럼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의 뜨거운 반응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소란하던 교실이 점점 조용해지는 것 같더니 어디선가 훌쩍훌쩍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보니 한 아이가 들킬까 봐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쪽에서도 훌쩍, 저쪽에서도 훌쩍훌쩍. 나는 영문도 모르고, “울어? 진짜 우는 거야?” 하니 그제야 울던 아이들이 고개를 든다. 예닐곱 명 되는 아이들이 울고 있던 거다. 놀란 나에게 선생님이 앞에 써준 편지가 너무 슬퍼요.”,“헤어지기 싫어요.”, “선생님 사랑해요.” 하고는 소리 내어 엉엉 운다. 생각지도 않은 아이들의 눈물에 울컥한다. 나도 시집 앞에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솟곤 하였는데 아이들도 나와 같은 그것을 느끼나 보다. 울먹거리며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니 한 아이가 뛰어나와 나를 꼭 안아준다. , 나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데도 이렇게 사랑을 받는구나.

 

시니어 어르신들께서 코로나 방역을 위해 학교 곳곳을 소독해 주신다. 재작년 우리 교실 앞을 소독해 주셨던 한 어르신과 나는 오가며 인사에서 안부로 그리고 가끔 소소한 먹을 것을 나누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게 되었다. 작년부터는 소독하시는 장소가 바뀌면서 만날 일이 거의 없었지만 학기가 끝나갈 때면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찾아가 인사를 나누곤 하였다. 12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 늑장을 부린 탓에 출근을 늦게 하였다. 숨차게 계단에 올라서는데 그분께서 교실 쪽 로비에 앉아계셨다. 나를 보더니 일어서 오시며, “선생님 뵈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신다. 평소 일찍 출근하는 걸 아셔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싶어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올해 오늘까지 나오고 내일부터 안 나와요. 선생님께 인사하려고 기다렸어요.”

저는 방학이 1월이라 더 계실 거로 생각했어요.” 하니 방학 동안 잘 지내고 운 좋으면 다시 3월에 만나자고 하신다.

어르신 제가 학교 옮길 때가 되었어요. 다시 못 만나서 어쩌지요? 섭섭해요.” 하니 어르신은 나를 안아주시며선생님 건강하세요. 학교 나와서 선생님 만난 거 감사해요. 못 만나도 고마웠어요. 행복하게 잘 지내요.” 하신다. 어르신 품에 안기니 눈물이 난다. 저도 고마웠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니 나를 토닥거리시면서 어르신도 우신다. 눈물을 훔치고 교실에 들어서는 내 손에는 홍삼 사탕 3알이 쥐어져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늦은 밤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다. 링거를 맞으며 응급실에 있다 보니 여러 생각과 감정이 지나간다. 3년 전 쓰러지신 엄마를 모시고 왔던 곳. 잊고 있던 그 날의 일들이 떠오르고, 그러면서 응급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나처럼 옷을 갖춰 입고 온 사람은 드물다. 엄마,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는 딸은 패딩을 뒤집어 입고 맨발이다. 많은 사람이 수면 바지를 입고 있고 한겨울인데도 맨발에 슬리퍼다. 급하게 병원으로 오느라 자신이 어떤지도 모르는 사람들, 애타는 얼굴로 침대 곁을 지키고 있다. 침대에선 아픔의 고통으로 침묵과 신음이 흐른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까닭을 깨달았다. 인간은 자신이 겪었던 힘든 일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져 그때의 고통을 그만큼의 무게로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별일 없이 지나는 일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고통과 애절함을 헤아릴 리 없다. 더군다나 애타는 심정으로 옷을 뒤집어 입고 맨발인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신은 인간이 바라는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원치 않은 고통과 슬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순간,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다. 고통과 슬픔, 아픔을 헤아리는 것은 신의 사랑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신은 그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는 누군가를 통해 깨닫게 하신다. 생각지도 않은 아이들의 눈물을 통해서, 우리 교실 앞을 소독하시는 어르신의 포옹 속에서,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에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반드시 사람의 손길로는 닿을 수 없는 척박한 삶의 순간을 지나게 하고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2024년 나는 모르게,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으로 쓰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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