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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전업주부, 연재를 마치며

[퇴직 교사, 전업주부로 살기 8]

 

| 정우식 회원

 

작년 8월부터 이 연재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31(20209월초 발행)부터 이번까지 대략 두 달에 한 번씩 글로 찾아뵈었다. 여덟 번째 연재다. 꼬박 16개월이다. 워낙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 이것저것 오가는 상념이며 살아가는 족적을 더듬어 주저리주저리, 미주알고주알 잔뜩 늘어놓았다. 전업주부 살림남으로서 그닥 잘 해온 것도 없으면서 요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필시 아내에게 점수를 매기라면(특히 방송용 말고, 찐레알로 매기라면) 낙제점 이상을 받기는 쉽지 않으리라그러나 남이 매기는 점수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스스로는 두둑한 점수를 주고 싶다.

 

우식, 칭찬해!”

내 주관 점수는~ 98!”

(양심상, 완벽하지는 않았으니 2% 정도는 부족했던 걸로 채점해두지, .^^)

힘껏 노력했으면 된 거 아니야? 나름 한다고 했으니까.

 

 

욕보는 남자, 주 임무는 배달부?

 

그동안 살림하느라 제법 욕봤다.’ (단어 선택에 고민이 적지 않았으나, 흔히 쓰는 욕보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입에 가장 잘 붙는 말이기도 하고 이치상으로도 적당한 것 같아 그냥 쓴다. ‘수고하다受苦라는 말에서 왔을 테니 고통이나 괴로움을 받는다는 뜻일 거고, ‘애쓰다도 애 태우고 속 끓이는 것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 어떤 단어를 선택해도 결국 의미상으로는 거기서 거기인 셈이다. 그런데도 내가 굳이 욕봤다에 더욱 끌린 이유는, 그 일이 어떤 일이든 남보다 더 애쓰는 일, 수고로운 일에는 칭찬보다는 부담과 책임이 숙명처럼 수반한다는 것을, 앞서 살아간 이들이 설파하여 어루만져주는 말인 것 같아서이다. ‘부담과 책임을 좀 더 극적이고 리얼하게 바꿔 표현한 것이 일 것이다. 책임질 만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대개 욕먹을 일도 없다욕보겄네~.” “욕봤지~?”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일하면서 생겼을 모든 설움이나 맺힌 것이 씻겨 내려가지 않을까? 전업주부도 그런 숙명을 가졌지 싶다. 잘한 것은 티가 잘 안 나고, 소홀한 티는 금방 나는... 그래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욕봤다의 매력에 확 꽂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업주부를 하면서 무슨 한이 맺혔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 마시라.ㅎㅎ)  단어 얘기가 좀 길어졌다. 이제 욕본 내용을 늘어놓을 차례다.

 

내 일상에서 반복되는 주된 임무는 배달이다. 앞서 밝혔다시피 지금 세 여자와 살고 있는데, 매일 아침 세 여자를 목적지까지 차질 없이 나르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상이 소중하고 일상이 곧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니 아침 풍경만 살짝 소개한다. 대충 이렇다.

 

 

여자 #1, 새벽 배송

 

아내는 시골 학교로 출근하느라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한다. 내가 퇴직하기 전에는 그 바쁜 새벽에 아내 혼자서 새벽밥을 챙겨 먹고 아이 셋 등교 준비까지 다 시켜놓고 언제나 정신없이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그게 늘 안쓰러웠다. 지금은 웬만하면 내가 밥을 챙겨 먹이려고 노력한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서 차려놓으면 아내는 6시경 밥을 먹는다. 그러고는 640분 직행버스를 타야 하니 6시 반에 집을 나선다. 이때가 첫 출동이다. 간이 버스 정류장까지 신속 배달.

 

이렇게 모든 게 정상 작동이 되는 날이면 두루 순조롭고 아내의 출근 준비는 한껏 여유롭다. 씻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뿐더러 멋 낼 줄 모르는 아내지만 거울 한 번이라도 더 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런데 이따금 내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못 일어날라치면 아내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해치우고, 한쪽에 널브러져 있는 이 배달부 남정네를 황급히 깨워 부리나케 내달아야 한다. 그런 날은 짠하다.

 

이런 일상이 어떤 분들에겐 별 것 아닌 일일지 모르나 내게는 기실 이것이 욕보는일이다. 본디 올빼미형 인간인지라 보통 글 쓰거나 하는 온갖 작업들을 거의 매일 한밤중에 해버릇해서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일 많으니 겨우 두어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5시 반부터 바삐 서대는 일은 내게는 여간 녹록치 않은 일인 것이다.

 

그 고생하지 말고 직접 차를 몰고 다니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으나 나는 안전과 비용적인 측면 외에도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아내의 장거리 운전 통근을 계속 만류해왔다. 하나는 환경 문제이다. 나 자신이 처음 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 퇴직 때까지 25년여 동안 줄곧 나 홀로 장거리 운전으로 통근하면서 늘 환경적 죄책감을 가져 왔다.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을 핑계 삼았으나 늘 마음은 불편했다. 더는 환경 부담을 추가하고 싶지 않다. 또 하나는 아내의 피곤함을 덜어주고 싶어서이다. 1시간 동안 운전하기보다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자거나 쉬면서 가면 조금은 덜 피곤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여자 #2, 오늘도 무사히

 

노모는 730분쯤 깨워드린다. 8시 무렵에 도착하는 주간보호센터(나는 그냥 노인학교라 부른다. 어머니는 일제 강압이 극심해지던 해방 직전에 국민학교 4학년이었는데 학교를 그만두셔야 했다. 학교를 마치지 못하신 걸 늘 한스러워 하시니 학교라 불러드리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통학차를 타셔야 한다. 옷이며 목도리며 모자며 작은 손가방까지 챙겨 드린다. 그토록 모자람 없던 어머니가 이제는 옷 하나 입으시는 것도 더듬거리실 때가 많다. 30여분 동안에 화장실도 서너 차례 이상 다녀오신다. 현관문 열고 나가는 것도 쉬이 못하신다. 엘리베이터 내림 버튼 누르시는 것도 한참만에야 해결하신다. 여러 미션을 어렵사리 하나씩 해결하며 탑승 대기 장소에 이르면 기다리는 몇 분 동안에도 쉼 없이 말씀을 하신다. 어제 한 얘기 또 하신다. 보통 한 열흘 정도는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하신다.

 

자연스럽게 말해버렸지만, 어머니는 몇 년 동안 그토록 완강히 거부하시던 노인학교에 다니신다. 올해 일어난 가장 엄청난 사건이었다. 추석 직전부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능했다. 어머니의 삶도, 내 삶도 다 나아졌다. 소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아지니 즐거워하신다. 이제 일상으로 받아들이셨고 당신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전반적인 감정 색깔의 톤도 전보다 훨씬 밝아지셨다. 나도 낮 시간이 자유로워졌을 뿐 아니라 심적으로도 조금 숨통이 트였다. 노인학교가 내겐 하느님이다.

 

 

여자 #3, 늦지 않도록

 

어머니 통학차가 출발하고 나면 후다닥 집으로 뛰어 올라간다. 아침 세 번째 미션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 #3번은 매번 초읽기 전쟁이다아내를 정류장에 쓸쓸히 부려놓고 여섯 시 사십 분쯤 돌아오는 길에 로컬푸드 매장에 들러 찬거리 푸성귀 따위를 사들고 와서 7시쯤부터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중3 딸내미를 몇 번에 걸쳐 겨우 잠에서 건져내고 나면 대략 30분 정도가 내 시간으로 주어진다. 내 할 일 하는 동안 막내는 씻고 단장하고 등교 준비를 한다. 내 마음은 언제나 바쁘고 쫒기지만 정작 그 녀석은 항상 느긋하니 나는 더 바쁘다. 8시에 어머니를 학교에 보내드리고 바로 딸내미 밥상을 차린다. 840분까지 등교인데 매양 독촉해도 8시 반에야 식탁에 앉으니 밥 먹는 시간은 기껏해야 뚝딱 5분도 채 안 된다. 거의 폭풍 흡입이다. 간신히 턱걸이해서 잰걸음으로 교문 안에 들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한숨을 돌리며 부산한 아침 풍경은 정리된다. 한 번도 지각한 적은 없으니 신기하다.

 

우식이, 욕봤어.”^^

 

고맙습니다.”

오늘 글은 연재를 끝맺는 글이니 좀 더 멋지게 마무리하려 했는데 또 갈피없이 늘어만 놓은 꼴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일상은 어디서 뚝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이니 매듭짓기보다는 차라리 그러는 게 나았지 싶기도 하다.

 

편집부에서 귀한 지면을 내어주어서 살림에서 얻은 몇 가지 상념들을 그나마 잃지 않고 주어 담을 수 있었다. 읽어주신 회원님들과 활동가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이 땅의 모든 전업주부들에게도 한마디 올린다.

아이고, 욕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