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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아침이슬’ 50주년 헌정공연 후기

| 서용운  회원

 

 

 

행운이 따랐는지, 사연을 잘 쓴 덕분인지 김민기의 아침이슬 50주년 헌정공연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습니다. 한겨레를 통해서 사연을 보내는 사람 중에 50명을 초대하는데 공연 티켓 2장씩을 준다는 것에 혹시나 하면서 응모했더니, 추석을 앞두고 선정되었다는 축하 문자를 받았습니다.

 

공연은 922일 오후 6시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오고 가는 길이 염려되는 것은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오후 6시에 시작한 공연은 쉬는 시간 없이 3시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열몇 명의 가수들이 똑같이 김민기의 노래를 2곡씩 부르는 형식이었습니다. 열몇 명의 가수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경우이지만, 반주, 음향, 코러스 어느 것 하나 거의 부족함이 없이 완벽했고 가수들의 열창은 더 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번 공연에 불렀던 노래들은 모두 편곡을 해서 새롭게 다듬었다는 것인데 역시 괜찮아 보였습니다. 행여 김민기 선생을 만나 기념 시디에 사인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공연하는 것 자체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날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는 늘 앞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하며 살았다고 하니까요.

 

아시는 대로 아침이슬은 1970년대 학생운동의 정신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금지곡의 대명사이기도 하지요. 김민기보다 양희은이 더 유명해진 노래이고 우리 대중 음악사를 통틀어 대중에게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명곡이라고 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1971년 발표된 그때 김민기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40년쯤 전부터 거리에서 어깨동무하고 최루탄에 눈물 흘리면서 불렀었던 노래를 최고의 가수들이 최고의 연주자들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걸 듣다 보니 마치 오래된 고전 음악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공연 시작부터 제가 내내 생각했던 것은 도대체 김민기가 어떤 사람이고 아침이슬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들 가운데 오랫동안 자리 잡고 불려져 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래를 한 곡씩 들으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진실과 연민이 아닐까 했습니다. 진실은 분단의 현실과 민중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진실에 대한 연민이 그의 노래이고 연극이고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아침이슬 50년 동안 그다지 변함없이 이어져온 진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단의 진실과 민중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진실 말입니다.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 가사 일부입니다. 그날은 장필순이 불렀는데, 검은 물만 고인 채 70년 넘는 분단의 세월 속을 아직도 헤매고 있는 역사의 진실에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이 세상 아무데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노래 가사 일부입니다. 1978년에 제작된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서 마지막 곡으로 불렀던 노래라고 하는데 여전히 어둡고 넓은 세상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하는 고단한 삶의 진실이 느껴졌습니다.

 

 

공연을 다녀와서 아침이슬 50년 기념 시디를 구매해서 열어보았습니다. 헌정공연에서 불렀던 노래와 그 노래의 배경 사연들이 자세히 쓰여있어서 이해하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앞쪽에 정태춘이 쓴 먹물 캘리그라피 글씨가 노래만큼 느낌이 전해집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그 아래 작은 글씨로 그의 노래를 한 번도 누워서 들어본 적이 없다

 

저는 누워서 들어서는 안된다라고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앉아서 듣고, 누워서도 듣고, 차에서도 듣고, 집에서도 듣고, 혼자도 듣고, 여럿이 듣기도 하겠습니다만, 김민기의 시대정신, 삶에 대한 진실과 분단 역사의 진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연민을 기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한영애가 김민기에게 빚진 마음이 많이 들어서 박학기에게 뭐 좀 하면서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데......

 

기억하는 것이 노래에 대한 빚을 조금 갚는 것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로나 방역 수칙 때문에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지는 못했지만, 소리없는 함성과 뜨거운 박수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정말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계실 텐데 제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같아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만, 공연후기 정도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서용운 목사는 전북대학교와 한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주 임마누엘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metas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