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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글] 살림 민주주의

| 정우식 (회원)



[퇴직 교사, 전업주부로 살기 3]


 


지난 10월 회원통신에서는 나를 둘러싼 환경 속의 를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주로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반환경적 삶을 살고 있는 나의 고민을 드러낸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여유가 좀 더 생기면 내가 생활하면서 하루에, 일주일에, 한 달 동안에 도대체 얼마만큼의 비닐과 플라스틱과 스티로폼과 휴지 따위를 소비하는지 일일이 수량을 기록하여 보고서를 써볼까 한다. 아마 부끄러운 고백적 환경 반성문이 될 것이다.

오늘은 살림을 하다 보니 내가 잘 보인다.’는 앞서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서 나의 민주성을 성찰해보려 한다. 모든 것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존적 질문이며 삶의 고뇌 같은 것이라 여겨주시기 바란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살림 민주주의라니? 살림과 민주주의의 뜬금없는 조합에 조금 뜨악하셨을지 모른다. 살림 이야기에서 갑자기 민주주의가 왜 튀어나와?

대충 이렇다. 살림을 하다 보니 살림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때가 훨씬 많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요리라고 보기도 힘든, 정말 손쉬울 것 같은, 예컨대 채소샐러드 같은 음식도 먹기는 간단하지만 거기 들어가는 채소 하나하나를 다듬는 과정에는 시간과 공력이 솔찬히 들어간다. 먹는 데는 몇 분 안 걸리지만 손질에는 1시간이 훌쩍 넘어 걸리는 것들이 많다. 콩나물국 하나 끓이려도 콩나물 다듬는 일이 어디 수월한가? 된장찌개, 떡볶이 하나, 짜장 소스 하나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음식이나 요리 자체보다 식재료를 사오고 준비해서 손질하는 과정이 훨씬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재미도 덜하다. 먹고 난 뒤 설거지와 뒤치다꺼리는 또 어떤가? 멸치 똥 까 본 사람은 안다. 마늘 다듬어본 사람은 안다. 여간해서는 애쓴 티도 잘 안 난다. 살림에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어떤 맛깔스런 결과물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지난한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것, 거저 쉽게 얻고 맛볼 수 없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살림 속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배운다.

아이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살림을 나눠주어 살림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깨닫도록 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란 무임승차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 먹듯이 남이 만들어놓은 달콤한 과실만 홀랑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체득할 기회 갖도록.

 

역할 고정, 비민주적인 나

지금 하는 이야기들은 이제 갓 열 달 지난 새내기 주부로 바라본 시각에서 나오는 것들이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 초보라 어쩔 수 없군. 허허하고 애교스럽게 봐주시길 바라면서 말을 잇는다.^^

독점하고픈 욕구는 민주주의를 해친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업주부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내 안에서 가사 독점 욕구가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주방이 내 영역이라는 그런 느낌, 내가 애써 꾸며놓은 방을 남이 손대서 물건 위치를 함부로 바꿔놓으면 속상한, 마치 그런 종류의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이건 역할 고정과 일의 전담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맞벌이를 하다가 무직자가 되었으니 그동안 사회 활동한답시고 소홀했던 가정일도 챙기고 아내 부담 좀 덜어주려고 집안 살림을 전담하자 자청한 것일 뿐인데, 이러한 역할 구분이 역할 행동의 고정과 단순화, 사고와 감정의 관성으로 자리 잡아 가며 비민주적 속성을 낳고 있는 과정은 아닐까? 나와 가족 서로에게 비민주성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나는 독점으로, 가족들은 의존성으로?

이렇듯 역할이 고정되고, 내부에서 비중이 높은 무언가를 누군가가 전담하게 되면 민주성에 손상이 온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두 그렇지 않을까?

 

역할 구분은 차이를 낳고, 차이는 차별로 변질된다.

처음엔 단순한 역할 구분이었을 뿐인데 역할 구분이 오래 지속되고 반복되다 보면 이내 차이가 생겨나고, 그 차이가 고정되고 집단화하면 어느새 차이는 차별로 변질되고 만다.

인류 문명 진화 과정에서 성 차별도 그렇게 자리 잡았으리라.

처음에는 그저 남녀가 생리적 특성에 따라 여성은 임신과 출산과 수유를 해야 하므로 집과 집 주위 정도로 생활공간이 제한되고, 역할도 대개 그 안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들, 곧 육아와 집안일 따위의 일견 단순하면서 때깔도 잘 나지 않는 일상적인 활동으로 좁아진다. 성적 특성에 따른 제법 합리적인 역할 배분이다.

반면에, 임신 출산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남성들은 멀리 돌아다니며 생계를 책임지는막중한 사냥 활동을 전담하게 된다. 사냥은 위험을 내포하고 위험은 권력을 확장한다.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고, 사냥감이 고갈되면 갈수록 더 멀리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하며, 다른 외부 세계나 세력과 조우해야 한다. 전쟁을 가져올 수도, 교류를 넓힐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그럴수록 정보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남성 권력은 강화된다.

남녀의 정보와 네트워크와 근육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별로 고착되었다.

 

이 글도 쓰면서도 틈틈이 살림을 하느라 글이 다소 두서없이 되었다.

살림에서 민주주의를 배운다. 비민주성을 거둬내려면 더 나누고 소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