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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꿈꾸는 나무

글 | 이주희 회원



 

내가 자라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난 말하지 못한 채 잎새만 펄럭이겠지

얘기해도 될까 매일 내가 꾸는 꿈

비웃지 않고서 나의 얘기 들어준다면 한번 느릿느릿 얘기해볼까

따뜻한 집

편안한 의자

널찍한 배

만원 버스 손잡이

푸른 숲

새의 둥지

기타와 바이올린

엄마가 물려준 어느 아이의 인형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내가 꾸는 꿈 얘기해도 될까 매일 내가 꾸는 꿈

비웃지 않고서 나의 얘기 들어준다면 한번 느릿느릿 얘기해볼까

작은 책상

동그란 거울

뜨거운 불빛

시원한 그늘

식탁 위 한 쌍의 젓가락과 술잔

눈물 닦아줄 휴지

사랑 전해줄 편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루시드 폴의 노래 ‘꿈꾸는 나무’》




아이들과 이 노랫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지 말입니다. 작가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하는 그런 거 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입니다. 이 노래 속 나무는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말 못한 채 잎새만 펄럭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저는 그 물음 앞에 자꾸만 멈춰서 생각에 잠기고 글씨를 썼다 지웠다를 여러 차례, 시간만 자꾸 보내었습니다. 


요즘 저는 생각이 많고 머릿속이 어지럽습니다. 평온했던 마음이 일렁이고 생각을 잘 정리해둔 서랍 안은 엉망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뾰족한 생각들, 삐딱한 시선으로 내뱉는 말마다 조각조각 버리고 싶은 것들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혼란의 시간들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울퉁불퉁한데 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온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불편한 시간들도 참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들을 수습하며 빠른 결론에 다다르려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시 날은 밝아 올 것이고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생각도 언젠가는 넘쳐날 때가 있다는 걸 믿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집도, 편안한 의자도 만원 버스 손잡이도 되지 못하더라도 불편한 이 시간동안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만큼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들은 어렵다 어렵다하면서도 반딧불이의 불빛도 농부의 밀짚모자도, 누군가를 데려다주는 길도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 적는 동안 저는 부끄럽게도 2개 밖에 적지 못했답니다. 생각의 벽에 쿵 부딪히고 또 부딪히며 나도 꿈꾸는 나무처럼 되고 싶다, 오래오래 생각하여봤습니다. 



 

내가 자라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따뜻한 녹차

나는 괜찮아 양초

널 위한 선물

포근한 이불

오직 내 꿈을 위해 나온 새싹

으차으차 함께 개미

괜찮아 일으키는 손

내가 미안해 목소리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이건 이거야 라고 하는 계산기


《하빈이의 ‘꿈꾸는 나무’》


얘기해도 될까 내가 매일 꾸는 꿈

힘들면 참지 않고 울 수 있게 하는 눈물

울다 지쳐 잠이 든 누군가의 포근한 이불과 베개가 되어 따뜻한 꿈을 꾸게 해

자고 있는 그 사람이 깨지 않게 부엉이가 되어 지켜주는 그게 내 꿈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가두어 아프게 하는 자물쇠


《차인이의 ‘꿈꾸는 나무’》




아이들이 차분차분 써내려간 노랫말들. 참 따듯하고 다정하여서 삐죽삐죽 얼어있던 마음도 녹이게 하였습니다. 꼭 저에게 해주는 노래 같고 마음 같습니다. 울퉁불퉁한 세상, 제 마음 편하자고 멋대로 쉽게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 흐르는 절절함과 아픔들, 작은 목소리, 제각각인 우리들 삶의 모습들과 손잡자 안아보자 생각하였습니다. 나무와 아이들이 노래한 꿈 처럼요.